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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되는 법] 등단, 투고 등 소설가 되는 방법 총정리 - 정지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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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Katie
    댓글 댓글 0건   조회Hit 8회   작성일Date 25-03-15 05:57

    본문

    ​매일 소설가되는법 글을 쓴다. 그리고 한순간 작가가 된다.​​;* 발행일: 2014년 11월 5일 * 읽은 날 : 2016년 (어느날 ) / 2024년 4월 (지금은 품절인듯)​​이 책을 처음 읽었던 것은 2016년 아이를 낳고 육아하던 시절이다.​당시만해도 비문학보다 문학을 좋아하던 때라 김연수 소설을 읽고 에세이까지 찾아 읽게된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 뿐이었던가? 이루지 못한 소설가의 꿈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육아 휴직 기간 동안 제 2의 인생을 생각하며 소설가라는 직업을 다시 가져볼 수 있을까 미약한 희망이나마 가져본 것은 아니었던가?​아마 그런 이유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그 이후 나는 (당연히) 소설가 같은 것은 되지도 않았고 물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다시 인생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내 비록 소설가는 되지 못했으나, 당시 이 책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김연수 작가님 소설도 재미있지만 말을 또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지... 그의 비유와 묘사, 그리고 은근한 아재개그가 내 취향에 너무나 딱인 것이다.​​그 뒤 약 10년이 지난 세월이 흐르고 나는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따뜻한 봄날 가볍게 읽을 문학책이 필요했던 참에 이 책이 별안간 생각이 났다. 당시 김연수 특유의 단정하고 위트있는 문장에 육아의 피로를 위로받으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펼치던 때 우리 딸이 꼬물꼬물 눈도 못뜨던 신생아였는데 지금 초딩 잼민이가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지만 책을 펼치자 다가오는 문장들은 몇달 전 읽은 듯 익숙하게 다가왔다. ​당시 재미있게 읽었던 흔적은 책 곳곳에 많은 줄침과 끄적임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깨알같은 문장의 체크 포인트들이 지금 다시 봐도 그대로 재미있다.​이 책은 일종의 창작론으로 소설가로서 어떤 자세로 소설을 써야 하는지, 소설이라는 것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이야기하는데 언뜻보긴 나와 상관없는 일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업'으로서 그 일을 소설가되는법 묵묵히, 꾸준히, 열심히 해 나가는 태도를 보며 업을 가진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돌아볼 수 있다. 또 소설을 잘 쓰기 위한 방법에 대한 것 또한 요즘 시대 너무 필요한 능력 아닌가. 스토리텔링은 기본 중 기본이다. 특히 나와 같은 업을 가진 사람에게.​소설가라는 직업이 예술성과 직관, 재능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끊임없이 쓰고 쓰는 과정을 통해 본인에게 없는 것을 끄집어 내고 다듬고 갈고 닦아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되기 위한 어떤 '업'이라도 다르지 않을것. 결국에 좋은 글을 쓰는 일도 꾸준하고 단정한 삶의 태도와 바른 마음에 있음을 알게된다. 어느 업에서나 일가를 이루는 사람의 공통점은 다 비슷한 모양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최근엔 늘 비문학 책만 읽다가 문학 관련책은 오랜만에 읽는다. 이 책에서 예시로 소개된 다양한 소설과 수필집들 다시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그렇지 않겠느냐만, 책 특히 문학책 읽기 너무 좋은 계절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집 서가에 꽂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읽어보면 좋겠다. 이렇게 가지치기 해나가듯 읽어나가는 독서 즐겁다. 나에게 아직 읽을 책이 무궁무진하다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작가소개김연수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장편소설 『7번국도 Revisited』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집 소설가되는법 『스무 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소설가의 일』 『시절일기』 『대책 없이 해피엔딩』(공저)이 있다. (출처 / yes 24)​​​​​​​​기억하고 싶은 내용 제 1부 : 열정, 동기, 핍진성그러니까 지금 뭔가를 쓰고 있다면 그는 소설가다. ​외숙모는 스스로 시를 발견한 것이다. 다른 대부분의 시인들과 마찬가리조 이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썼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이 돘다.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나면 그건 도무지 내가 쓴 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새로운 사람, 즉 신인이 됐다.​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소설가가 재은에 대해서 말할 때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치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이다. ​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글 쓰는 일. ​내가 생각하는 젊은 소설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스물네 시간 백치에 ㄱ까울 정도로 한 가지 생각만 할 것이다. 문장들, 더 많은 문장들을. 자신의 것인지, 읽은책의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오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이지 구분이 모호한 문장들만을.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은 저절로 구분이 될 테니 지금은 마르케스처럼 쓸 것인가 죽을 것인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귄터 그라스처럼 휘갈겨쓰는 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바지는 사람도 있을가?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소설가되는법 그걸 해라. ​​어음 소설을 쓰려고 앉았을 때, 나는 무엇도 감각하지 못하는 영혼과 같다. 그래서 무엇이든 감각하려고 애를 쓴다. 그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빠르게'쓰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조금씩 소설 속의 세계는 작가에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초고는 그렇게 쓰여진다. ​​그녀는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다&quot라는 관념에 세부 정보라는 빛을 조이면 소설의 문장이 나온다. 질투심이 강한 여자의 눈빛은 어떻게 생겼는가? 질투심이 강한 여자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 가? 질투심이 강한 여자는 언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가? 소설의 문장이라는 건 이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 ​​(캐릭터 + 욕망) / 방해물 =이야기 ​(보고 듣고 느기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생고생(하는 이야기)​​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이 인생은 나의 성공과 실패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에 얼마나 대단한 걸 원했는가, 그래서 얼마만큼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느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래서 거기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가, 다만 그런 질문만이 중요할 것이다. 인생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사랑이 없다면 피할 수 있었던 많은 생고생들이 이를 증명한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이 생고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생고생이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의 모양을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싶어진다. ​​현대 소설의 주인공이 온몸으로 끌어안아야 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 아니라 이 불안이다.​인간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보다 구닥다리로 느껴지는 소설은 없다. 설사 그의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다고 해도 불안 속에서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하기 소설가되는법 위해 발버둥치는 주인공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왜 하필이면!'과 '설마 그럴줄이야!'를 번갈아가며 느낄 때, 독자들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에게 빠르게 감정이입하니까. 모든 불행은 왜 하필이면 가장 행복해지려는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나는 것일까?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매력적인 사라'그리고 그 매력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생고생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의 ㅡ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감정이입하는 대상은 다른 등장인물보다 더 구체적인 정보를 더 많이 보여주는 쪽이다. 더 구체적으로 더 많이 알게 되면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게 뭔가? 그 사람에 대해서 남들보다 더 ㅁ낳이 아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을 자기처럼 사랑하는 것. 소설을 읽는 경험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경험과 닮아 있다. ​​이런 우주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건 여러번 고칠수록 문장이 좋아진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플롯과 캐릭터 같은 건 처음부터 직관적으로 멋진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해도 문장만은 제인먼저 쓴 문장이 제일 안좋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세 가지다.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 ​​언어의 세계가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제일 바깥쪽이 추상적이고 큰 단어들, 예컨데 평화, 정치, 슬픔, 절망 다위의 단어들이 단ㄷ나하게 감사고 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숨어 있다... ... 좀 쓸만한 단어는 그런 너저분한 단어들을 뚫고 가야 나온다. ​​​​​제 2부 : 플롯과 캐릭터 소설가로서 나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곡선을 그린다고 새악한다. 긴장이 서서히 고조되다가 최고조에 달한 뒤 순식간에 풀리는 곡선이다. ​​모든 플롯은 어떤 행동/ 액션에서 시작한다. ​모든 게 갖춰진 사람들은 행동할 필요가 없다. 원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갖지 못한 사람들, 이루지 못한 사람들, 배앗긴 사람들만이 행동할 수 있다. 소설가되는법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반영한다. 행동은 방드시 갈등을 일으키고 이 갈등은 주인공을 감정적으로 좌절시킨다고 말한다.​위대한 플롯은 주인공의 삶 전체를 담보로 걸고 마지막 승부를 향해 나아간다.​​​소설의 문장은 옷과 같은 일을 한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욕망이 절대 문장으로 노출되지 않는다. ​​캐릭터가 자기 속마음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어느 정도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이 된다.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캐릭터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 ​​주인공의 세계관이 바뀌었다고 그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걸 보여주려면 소설작법에서 그 사람의 대사와 행동과 표정과 몸짓들 중에서 하나를 바꿔야만 한다. ​​핍진성이란 소설 속의 세계가 긴밀하게 짜여 있어서 현실과 무관하게 나름대로 독립적인 세계를 이루는 성질을 뜻하니가. 그러므로 핍진한 소설이라면 캐릭터들은 진부한 날것의 말들을 자신들의 백스토리와 가치관과 욕망에 걸맞은 참신한 표현으로 끊임없이 바꿀 것이다. ​​작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쓴다는 동사일 뿐입니다. 잘못 쓴다고 하더라도 쓰는 한은 그는 소설가입니다.​​그러니까 남들과 다른 진부하지 않은 독특한 이야기를 쓰겠다면 전락의 이야기보다 회복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 악행은 이유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악행은 정신적 수준이 저열하고 천박한 사람들도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선행을 행하려면 수준이 좀 높아야 한다. 선행을 행하려면 좀더 배워야만 한다.​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천박한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사실 악은 선의 결여일 뿐이다.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가 바로 악행이다. ​전락의 이야기보다는 회복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전락의 이야기는 대게 비슷하게 전개돼 개성있게 쓰기 어렵지만 회복의 이야기는 천차만별이라 섯적으로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악의 이야기는 진부한 이야기를 쓸 가능성이 많다.​​좌절은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아주 중요한 도구다. 플롯을 잔다는 건 주인공이 원하는 걸 쉽게 얻지 못하게 못하게 소설가되는법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을 구성한다는 의미니까. 처음부터 자신의 모든 걸 거는 사람은 없으니 시작은 아주 작은 좌절부터다. 하지만 조금씩 더 큰 좌절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겪는 시련은 더 가혹해진다. ​​​제 3부 : 문장과 시점독자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시키려면 1) 캐릭터의 관점에서 주인공에 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더 ㅁ낳이 제공하며2) 플롯의 관점에서 주인공을 거듭 좌절시켜서 독자들이 그를 걱정하게 만들면 된다.​이제 소설으 ㄹ쓰겠다면 여기에 더해 독자를 감정이입 시키기 위한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최대한 미문을 써서 주인공을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게 만들면 독자들은 감정이입하기가 쉬워진다. 그렇다면 미문이란 무엇인가? 문장에서 미문은 흔치 않은 일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 문장이다. ​소설에서는 흔한 일을 흔치 않게 쓸 때 미문이 된다.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펄펄 끓는 얼음에 이르기 위한 5단계]​생각하지 말자.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 ㄴ 실제 문자로 써보기 전가지는 어떤 구상이나 생각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자. 플롯을 짜지 말자.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쓰고 나서 생각하자.​​2. 쓴다. 토가 나와도 계속 쓴다.ㄴ 인생 문제 대부분은 자꾸만 과거 속에서 살려고 하거나,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ㅇ르 모르거나, 미래를 알려고 할 때 일어나니까. 그 중에서도 문제의 근원은 자신이 지금이나 미래의 일들에 대해서 뭘 안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미래에 대해서는 오직 모를 뿐이다. 현재 역시 모르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살 수는 있다. 과거는 다시 살 수 없는 대신에 알긴 안다. 하지만 이 안다는 건 지금이나 미래에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다.​시간의 압력을 견딘 건 책의 내용 이전에 문장이다. 일단은 문장이 읽혀야 내용도 읽을 게 소설가되는법 아닌가? 미래에도 읽을 수 있는 문장, 그게 바로 소설가가 써야 할 문장이다.​그렇다면 미래에도 읽을 수 있는 문장은 어떻게 쓰는 것일가? 지금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쓰면 된다.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3.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 놓은 걸 치운다. ㄴ가능하면 동사(혹은 형용사)와 시제만 남게 서술어 부분을 단순하게 만든다. '선물하였다도 선물해봤다도 선물해줬다도 모두 선물했다로 줄인다는 뜻이다. 이렇게 서술어 부분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쓴 것인지 조금씩 명화해진다. 그러면서 글의 내용이 빈약해진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복잡한 서술어 구조 때문에 가려졌던 빈약한 구조가 드러나면서 내가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4. 어느 정도 깨끗해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 ㄴ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아는지 자신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만한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쓸 수 있다면 그걸 문장으로 쓰자. 자기가 지금 뭘 보고 듣고 만지고 또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나는지.​​​5.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해라ㄴ글을 쓰기 전에 소설가는 생각하지 않고 감각한다는 사실이다. 글으 ㄹ쓰기 전에는 오로지 감각할 수 있는 것들로만 구성된 이야기 뿐이다. ​​​소설가의 일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하라면, 나는 &quot할 수 있는 한 가장 느리게 글 쓰는 일&quot이라고 대답하겠다. ​소설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하니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됐다. 그렇게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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